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효자 김강철 충효정려각
- 문화재지정 : 구례군 향토문화유산
- 제작연대 : 1872년
- 높이 : -
- 위치 : 구례군 광의면 수월리 308-2
해설
김강철(1762~1824)의 본관은 경주, 김우국과 김해김씨 사이에서 2남 1녀 중 큰아들로 태 어났다. 어릴 때부터 천성이 어질고 근면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. 아버지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밤낮으로 치성을 드렸으나 돌아가시자 슬프게 통곡하였다가 반나절이나 혼절하였다 한다. 5년 뒤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. 이후 세상에 나타나는 것 을 부끄러워하며 부모의 명복을 빌면서 나날 을 보냈다고 한다.
1800년 정조 임금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듣 고 북쪽을 향해 예를 갖추었고, 3년 동안 소식 (小食)하며 지냈다. 그가 죽고 난 뒤에 그의 충 과 효행 사실이 널리 알려져 순조 31년(1831) 에 조봉대부 동몽교관의 벼슬을 받고, 고종 9 년(1872)에 충효의 명정이 내려지자 후손들 에 의해 정려가 건립되었다. 1919년에는 충효 각을 단청하고, 1989년에 정려각 내부에 비를 세웠다.
1800년 정조 임금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듣 고 북쪽을 향해 예를 갖추었고, 3년 동안 소식 (小食)하며 지냈다. 그가 죽고 난 뒤에 그의 충 과 효행 사실이 널리 알려져 순조 31년(1831) 에 조봉대부 동몽교관의 벼슬을 받고, 고종 9 년(1872)에 충효의 명정이 내려지자 후손들 에 의해 정려가 건립되었다. 1919년에는 충효 각을 단청하고, 1989년에 정려각 내부에 비를 세웠다.